노여주의 시집을 읽고 있으면 작품 곳곳에 홀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고독에만 함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함께 하는 동반자들과 눈을 마주치며 걷고 있다는 것 또한 볼 수 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홀로 걷는 것이 진정으로 함께 걷는 것이라는 사실을 작품 안에서 면면히 찾아볼 수 있다.
서평
젊은 날 훌쩍 도미 유학을 떠난 사람,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육체적 고통을 고쳐준 사람, 그런 그가 은퇴 후 사람들의 마음을 고치기 위해 한 권의 시집을 냈다. 『이별 이후』는 만남과 이별을 동시에 관통하고 있다. 만남은 곧 헤어짐이며 헤어지는 것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시집 전체에 묻어 있다.
저 멀리 타향에서 살며 느낀 고국에 대한 향수 때문에 힘들어하는 한 인간의 모습,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를 본 노년의 신사, 의사로서 아파하는 혹은 떠나가는 환자를 보며 느낀 찢어지는 마음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함께 우정을 나누는 순수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자아에 대한 성찰, 연륜이 느껴지는 삶에 대한 관찰 등 작가의 방대한 사유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여러 주제 가운데서 한 가지 관통하는 큰 줄기가 있으니 그건 ‘사랑’이다. 모든 만남과 이별 그리고 관계를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행해진다는 시인의 굳은 믿음이 보인다.
다음은 「동행 2」의 전문이다.
인생보다 더 긴 길은/없다 /더 먼 산은 없다/아무리 길고 먼 인생이라도/동행보다 더 소중한 것은/없다/손잡고 바라보는/일몰의 저편/그것이/나의 마지막 기도가 되었다
시에서도 나타나듯이 ‘아무리 길고 먼 인생이라도/ 동행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제 은퇴를 하고 노년을 보내는 시인에게 ‘일몰의 저편’은 그냥 ‘일몰의 저편’이 아니라 ‘손잡고 바라보는/ 일몰의 저편’인 것이다. 노여주의 시집에서는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마음이 뭉클해지고 따뜻해지는 이 시집이 올가을을 마냥 쓸쓸하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본문발췌
이역에도 가을이 오고 이역에서 나는 할아버지가 되어 산다 돋보기가 없으면 읽을 수 없는 첫사랑의 편지 해가 바뀔 때마다 의미가 더해가는 나이인데 어렵구나 나는 아직도 눈물이 많고 아직도 한숨이 많다 바다를 건너온 그날부터 나의 꿈자리는 늘 숭숭하고 흰 머리가 늘어갈수록 아득해지는 고향 하늘 나의 꿈속에는 아직도 동구 밖 길이 있고 배가 고파도 들풀처럼 쑥쑥 자라던 동무들이 있고 어머님도 기다리시는데 그리운 사람들은 모두 바다 저편에 있다 몰래 흘린 눈물과 흘리지 못한 눈물이 하늘 너머 아득한데
낙엽이 지고 있는 이역의 오후 오늘은 그리운 것들을 오래 그리워하자
- ‘타향살이’ 전문
차례
머리말
제1부 이별이야기
동행 가벼운 이별 이별 이후 이별연습 운명 거울의 눈물 가을단상 풋사랑 혹은 장미의 죽음 이별 이후 2 타향살이 작별 동행 2 이별
제2부 혼돈의 시절
고백 나는 누구 없소 맘대로 고흐의 초상화 잃어버린 우산 암 병동 삼천포 일기 겨울새 부활절 아침 내가 신선이 되지 못하는 이유 거짓말 고향은 지금 까치의 노래 평범한 거짓말 장마 망부석 겨울 없는 겨울 빈소에서 고도에서 미안하다 구차한 변명
제3부 그리움 그리고 사랑,
사랑으로 삼포 연가 풋사랑 인연 빙어 크리스마스 이브 첫사랑 망향 망향 2 사랑 달타령 가을 친구 반칙 실연 빗속의 여인 대전발 0시 50분 어머니 날에 봄 랩소디 2 어떤 주말 오후 손자 출생하다 종점의 추억 부다페스트에서 모스코까지 사랑이야 봄 랩소디 바람이 되어
제4부 젊은 날의 흔적
겨울이야기 가을 편지 특혜동네 출발 노을이 버리고 간 시간에 小市民의 아침 편지 꽃 꽃 2
저자소개
노여주 (James Noh)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도미 유학 Baltimore General Hospital 및 W. Virginia 의대 Medical center 수련 Twin Lake Medical Center 마취/통증/중환자실 과장 파익스빌 의과대학 임상교수 재미현대시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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