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마음을 울린다. 『시를 쓰는 사람아』, 시를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적어도 그 사람은 마음이 아주 따뜻한 사람일 것이 틀림없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고 감정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정호의 시집 곳곳에는 아내와의 추억이 곳곳에 서려 있다. 살아생전 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 그 시절 행복했던 날들이 시편에 녹아 있다. favorite song 부분에서는 저자 젊은 날의 추억도 엿볼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 또한 각자의 향수에 젖게 될 것이다.
서평
서정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짠해진다. 어느 누가 이런 사랑을 할까,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곳곳에 묻어 있다. 젊은 날 하는 사랑이야 누군들 안 뜨겁겠느냐마는 그 불꽃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꺼지지 않는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애틋함, 그 자체이다. 그의 시 부제이기도 한, 저자의 사유가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는 시 한 편을 살펴보자.
때로는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밥을 짓기도 했습니다. 벌써/두어 달째 그녀를 두고 식사 준비를 합니다./서툰 솜씨의 반찬으로 그녀와 마주 앉아 저녁밥을 먹습니다./(중략…)/화장실 문이 열려 있고 불이 켜져 있는 걸로 봐서 미처 들어가/기 전에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쓰러지는 순간 얼마나 날 애타게/찾았을까요? 그녀의 이마와 입술에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세 번 숨을 몰아쉬더니 그만 호흡을 멈추고/말았습니다./119를 통해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녀는 가망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함께 한 날 후로 그녀는 내게 29년 동안 밥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녀와의 마지막 저녁 식사」 일부
아픈 아내를 위해 ‘때로는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밥을 짓기도 했’다는 그는 ‘벌써/ 두어 달째 그녀를 두고 식사 준비를’ 한다. 그의 마음은 어떨까? 함께 식사를 마치고 잠시 뒤 ‘그녀의 이마와 입술에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세 번 숨을 몰아쉬더니 그만 호흡을 멈추고 말았’다. 그런 그녀는 나에게 ‘함께 한 날 후로 그녀는 내게 29년 동안 밥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고작 두 달 밥을 지어준 것이 전부인 화자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그녀의 행동에 비춰 돌려 말하고 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자주 다니던 길이 왜 그렇게도 낯설어 보였는/지 모릅니다./머릿속이 텅 비어 왔습니다./그녀는 들것에 실려 누워 있고 손발은 차갑습니다./가슴에만 아직 약간의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구급 요원의 연락을 받은 응급실에는 의사 두 명과 간호사/세 명이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에 필요한 기구들을 대기시켜/놓고 있었습니다./그녀가 마지막 호흡을 한 지 50분은 넉넉히 지났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응급실 팀의 노력으로 다시금 그녀의/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어 두 번씩이나 끊어졌다가/다시금 뛰기까지 초긴장의 숨 막히는 시간이 흘렀습니다./의사가 다가왔습니다. 심장은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아 뛰고/는 있으나 언제 다시 꺼질지는 알 수 없는 상태라는 것, 그리고/99퍼센트 뇌사腦死 사실을 통보해 주었습니다./그녀가 다시금 숨을 쉬고 있습니다./손발과 싸늘하던 이마에도 다시금 온기가 돌아왔습니다./다시금 그녀의 따뜻한 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응급실」 전문
작품을 보면, 뇌사라는 절망을 보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금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 보였다. ‘손발과 싸늘하던 이마에도 다시금 온기가 돌아왔습니다./ 다시금 그녀의 따뜻한 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 안에서 느껴지는 사랑의 정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다가오는 가을날, 마음을 흠뻑 적실 수 있는 시집 한 권이 나왔다. 각박한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마음이 뭉클해지는 시집 한 권 들고 바람 쐬러 나가보는 건 어떨까?
본문발췌
한 줌 그대의 흔적을 안고 돌아오는 길목엔 오월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합니다 뻐꾸기의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골짜기마다 산벚나무 꽃이 수채화의 물감처럼 번졌습니다 갓 돋아난 잎들은 바람결에 살랑이고 태양이 하늘에서 황금빛 살을 쏘아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강물은 느릿하게 산굽이를 휘돌아 흐를 때 짐 실은 자동차의 행렬이 지나가고 건너편 공사장의 망치질 소리가 한낮의 정적을 깨뜨립니다 변한 것도 달라진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알고 있을까요 아주 오랜 친구 하나가 내게서 떠나가 버렸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의 삶은 한순간 모든 것이 달라져 버린 것을!
-「상실喪失」 전문
차례
서문
제 1 부 시를 쓰는 사람아
詩를 쓰는 사람아 유월 아침 숲길을 가다 오후 6시 소녀(少女) 단절(斷絶) 추억(追憶) 명예(名譽) 봄을 헤아리다 경부고속도로 건천(乾川)을 지나며 내일(來日) 12월의 정원 생활(生活) 어느 작자(作者)에게 눈 오는 날의 정경(情景)- 창 밖에 눈이 내리고 초병 근무 도시, 서울의 하늘에 눈이 내릴 것 ♣ my favorite song 그 집 앞 콜로라도의 달 매기의 추억 토셀리의 세레나데
제 2 부 쓸쓸함,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쓸쓸함,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바람 부는 날 그녀가 온다 견고한 고독 웃음소리 자작나무 숲에서 소묘(素錨) 어느 나부(裸婦)의 독백 빈자(貧者)의 뜰 여름의 끝 만추(晩秋) November 한 편의 시를 위하여 한 편의 좋은 시를 대하거든 파장(罷場) 오두막집 세상에 시를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겨울 이제 내가 그대를 사랑하려 함은 잊고 사는 분들께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 오는 날 아침을 내 나이 열일곱 되기까지는
바이올렛 첫사랑 오월의 자유 다짐-시인 소월에게 겨울 강(江) 현장(現場) 성(城) 회상(回想)
제 3 부 그녀와의 마지막 저녁 식사
손에 대한 추억 그녀와의 마지막 저녁 식사 응급실 뇌사(腦死)1 뇌사(腦死)2 당신아 미안해 고백 2010년 5월 5일 당신아, 잘 가 상실(喪失) 못다 부른 노래 찬양의 기도 회한(悔恨) 흔적1 흔적2 후회 귀가(歸家) 눈물 바보 길1 길2 흔적3 보고 싶습니다 흔적4 흔적5 The end 안경 뒤뜰 나무딸기 빈 배 그 누가 알까 덧없는 사랑 재회(再回) 오월의 추억 아내 가을 편지(그리움) 당신이 계신 곳 가장 그리운 것은 기적(奇蹟) 江이 울 수도 있다는 것을
서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