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베스크’의 사전적 정의는 [문자 ·식물 ·기하학적인 모티프가 어울려서 교차된 곡선 가운데 융합되어가는 환상적인 무늬]이다.
권태철의 시집 ‘아라베스크’는 수많은 무늬로 엮어가는 하나의 거대한 조합이다.
‘그의 시집은 그 자체로 단 하나의 시이며 단 하나의 귀결이며 또한 단 한 조각, 한 문장 그 자체로도 따로 떨어져 완성된 모습이다.
권태철의 이 특이한 실험은 사물에 대한 놀랍고도 기이한 통찰과 상상력과 더불어 독자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파문을 던질 것이다.
서평
이미지, 이미지. 대상으로부터 이미지를 끄집어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미지는 하나의 관점일까. 대상으로부터 끄집어낸 이미지들을 엮어 대상을 재구성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대상은 왜곡될까. 놀라운 통찰을 주지는 않을까. 이미지를 수(數)처럼 사용할 수는 없을까. 이미지는 모델링일까. 이미지를 엮어, 이미지만으로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을까. 피타고라스. 이미지를 엮어 세상의 비밀을 엿볼 수 있을까. 통찰할 수 있을까. 수식(數式)을 엮어 세상의 비밀을 풀어내는 그들처럼, 이미지로 깨달을 수 있을까.
몽타주, 몽타주. 표현을 배열하는 느낌으로 한다면 어떤 효과를 낼까. 시의 각 부분들을 점찍듯 배열하면 어떨까. 유화에서 색 덩어리들을 덕지덕지 찍어 바르듯 시를 쓸 수는 없을까. 이미지를 덕지덕지 붙여 대상을 재구성하면 어떤 효과를 자아낼까. 시집 전체가 문장의 배열 혹은 이미지의 배열이라는 느낌을 주도록 하면 어떨까. 배열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을까. 배열의 수순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을까. 반복과 변주로 겹겹의 구조라는 느낌을 주도록 배열해 나가면 어떨까. 산처럼 웅숭깊어질까. 배열의 단위, 그 단위를 극히 단순화하면 어떨까. 그 단위를 분자나 단세포라고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하여 그것이 오직 하나의 의미만을 나타내도록 하면 어떨까. 그것들을 몽타주하듯 붙여 나가며 전체를 이루는 것은 어떤가. 유기체가 될 수 있을까. 덩어리지는 상호 작용이 될 수 있을까.
교향곡, 교향곡. 이미지의 흐름을 음악적으로 구성할 수 없을까. 이미지를 반복, 변주시키며 흐르게 하면 음악적 효과가 나타날까. 이미지는 흐르면서 자기 흐름을 갖게 될까. 자기 논리를 갖게 될까. 어떤 주제를 지향하는 일관된 흐름을 갖게 될까. 교향곡처럼 그렇게. 이미지의 교향곡. 그런 이미지의 반복과 변주는 어떤 무늬를 이루어 가지 않을까. 아라베스크 같은 무늬를 이루어 가지 않을까. 무늬를, 무늬의 교향곡. 이미지로 이루어진 교향곡, 그 이미지의 선율에 희로애락의 감정과 삶에의 통찰을 담을 수 있을까. 이미지의 맥락들을 선율처럼 쓰고 그 선율들을 대위(對位)시켜 하나의 교향곡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본문(발췌)
생채기는 거미줄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생채기로 거미줄을 친다. 그렇게 스스로 거미가 되어간다. [210]
거미는 허공에 도로를 건설한다. 그것은 스스로를 위한 닫힌 도로다. 섬처럼 고립된 채 허공에 떠 있는 도로망, 그런 도로망은 덫이 된다. [211]
허공에 돛처럼 떠 있는 거미. 허공에 닻처럼 고여 있는 거미. 거미는 돛이면서 닻이다. 그리고 덫이다. 하나이면서 둘이다. 그리고 셋이다. 갈라지는 모양들. [212]
거미를 보고 있다. 시간이 무수한 결로 갈라진다. 그 각각의 결이 각각의 대상에 고여 든다. 다시 거미를 보고 있다. 내 안에 고여 든 시간, 그것은 유한이다. 나는 그 시간을 吐해내려 애쓴다. 환상을 통해 吐해내려 애쓴다. 환상을 통해, 불멸에 이르고자.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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